직전 올림픽 도쿄에선 ‘야구’ 있더니…파리에선 왜 없나요?
“야구는 안 해요?”
지인이 물었다. 한창 파리올림픽이 진행 중인 터. 야구팬이 아닌 지인은 올림픽 야구 여부가 궁금했던 듯하다. 우리나라 구기 종목 중 파리올림픽에 참가한 종목은 여자핸드볼이 유일하다. 여자핸드볼 외에 다른 구기 종목들은 예선전에서 떨어졌으나 야구는 예선전조차 없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정식종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구는 파리올림픽 45개 종목에 채택되지 못했다.
야구가 올림픽에 등장했던 시기는 비공식적이지만 1900년 파리 대회였다. 1924년 스톡홀름 대회 때는 이벤트성으로 경기가 펼쳐져 미국이 개최국 스웨덴을 13-3으로 꺾었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인 야구는 올림픽의 아마추어 정신과 양립할 수 없다는 의견 아래 1960년 이후 20년 가까이 올림픽에서 이벤트 종목으로도 치러지지 않았다. 야구는 1984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 이벤트 경기로 부활해 1988 서울올림픽에서 ‘시범경기’라는 공식 명칭으로 치러졌다. 1984년에는 일본이 미국을 꺾었고, 1988년에는 미국이 일본을 눌렀다.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때였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까지 아마추어 선수만 출전할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해 일본, 한국, 대만 등 프로리그가 있는 나라는 대학생 선수 등만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반면 쿠바는 최강의 팀을 꾸려서 올림픽에 나섰고, 연거푸 우승했다.
2000년 시드니 대회 때부터 프로야구 선수의 올림픽 출전이 허용됐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일정이 겹치면서 미국은 여전히 마이너리그 혹은 대학 선수를 대표로 내보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해 일본은 리그를 중단하고 리그 최고 선수를 대표팀으로 꾸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에 메이저리거의 올림픽 불참을 물고 늘어졌다. 미국프로농구(NBA)의 경우는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올림픽에 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NBA의 경우 정규 시즌과 올림픽 기간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IOC와 MLB 사무국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야구는 2012년 런던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됐다. 이는 1936년 베를린 대회 때 폴로가 올림픽에서 퇴출당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야구는 2016년 리우 대회 때도 올림픽에 복귀하지 못했다.
하지만 2021년 열린 도쿄 대회 때는 일본 내 야구 인기로 올림픽에 ‘잠깐’ 돌아왔다. 개최국의 특권에 의한 채택이었다. 그리고, 파리올림픽에서 다시 제외됐다. 프랑스에서 야구는 보편적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팀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프랑스는 야구 대신 서핑, 스케이드보드, 스포츠 클라이밍, 브레이크댄스를 정식종목으로 택했다.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청소년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창의성과 운동 능력을 보장하는 종목을 우선 순위로 뒀다”고 했다.
IOC가 장기적으로 남녀 참가 선수 비율을 50대 50으로 맞추려는 목표를 정한 것도 야구는 불리하다. 야구는 여자 소프트볼과 짝을 이루는데 선수단 규모에서 차이가 있다. 야구 엔트리는 24명, 소프트볼 엔트리는 16명이다. 도쿄올림픽 기준(각각 6개국 참가)으로 남녀 선수 수는 48명이나 차이가 났다.
야구는 2028년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때 올림픽 무대에 복귀한다. LA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야구/소프트볼, 플래그 풋볼, 라크로스, 스쿼시, 크리켓을 개최국의 특권을 앞세워 정식종목으로 채택했다. 2032년 개최지가 호주 브리즈번이기 때문에 이때도 야구는 올림픽에서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최대 관심은 LA올림픽 때 빅리거들의 참가 여부다. 로스앤젤레스는 다저스, 에인절스 두 개 구단의 연고지다. LA올림픽 조직위원회는 MLB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지난 2월 MLB 구단주 회의에서 이와 관련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다.
물론 MLB는 냉소적이다. 시즌 일정도 있고 선수 부상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MLB는 MLB 사무국이 주도하고 시즌 전 스프링캠프 기간(3월) 열리는 WBC 외에는 메이저리거 선수를 국제대회에 출전시키지 않는다. 11월 열리는 프리미어리그12 등에도 출전시키기를 꺼린다. 프리미어12는 WBSC(세계베이스볼소프트볼연맹)와 일본 NPB 사무국이 주도하는 국제대회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엿보인다. 롭 맨프레드 MLB 총재와 토니 클락 MLB선수노조 수장은 최근 열린 MLB 올스타전에서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나 브라이스 하퍼(필라델피아 필리스) 등 MLB 스타들도 올림픽 출전 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하퍼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올림픽에서 많은 종목을 시청하는데 이는 멋진 일이다. WBC가 있지만 올림픽과 같지 않다. 올림픽은 꿈에 그리던 대회”라고 밝혔다. 하퍼는 필라델피아와 계약하면서 계약서에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으려고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WBC는 야구팬만 보는 반면 올림픽은 모든 스포츠팬이 즐긴다. 가뜩이나 젊은 층에게 외면받는 MLB로서는 올림픽이 지속 가능한 스포츠를 위한 타개책이 될 수 있다. 신규 팬 확충을 위해 최근 들어 한국, 일본, 멕시코, 영국 등에서 원정 개막을 치르는 것을 생각하면 올림픽은 이보다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쿠바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야구대표팀 모습. 베이징/연합뉴스
한국만 봐도 그렇다. 한국야구는 IMF와 함께 MLB 인기에 밀려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다가 2006 WBC 4강을 발판삼아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을 계기로 흥행 추진력을 얻었다. 팬층의 고령화로 골머리를 앓는 MLB가 참고할 만한 예다. 오타니는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와 인터뷰에서 “올림픽은 야구팬이 아닌 사람들도 경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야구 산업에 정말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스피엔(ESPN)은 MLB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를 위해 2028년 올스타전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올스타전 브레이크 없이 시즌을 치르다가 올림픽 기간 열흘간의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 채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28년만 팀 경기수(162경기)를 줄이거나 개막을 일찍 하는 방법도 있다. MLB 스타들의 올림픽 참가가 리그 산업 확장에 긍정적 효과를 거둘 경우 이는 2032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올림픽 야구에서는 쿠바(1992년·1996년·2004년)가 가장 많은 금메달을 땄고, 한국(2008년)을 비롯해 미국(2000년), 일본(2021년)이 한 차례씩 최정상에 섰다. 사상 첫 MLB 선수 출전이 확정되면 2028년 LA올림픽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 될 전망이다. WBC가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치러지는 반면 올림픽은 시즌 한복판에서 기량이 올라왔을 때 펼쳐지기 때문이다. 2028년 올림픽 야구, 벌써부터 설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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